들어가며

2024년, 나는 한국을 떠나 네덜란드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에는 돌아갈 집이 없었고, 네덜란드는 비유럽권 사람이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두 곳 모두에서 조금씩 외부인이 된 이후로, 주거는 내게 안식처가 아니라 관리해야 할 조건이 되었다. 잠이 가능한 방, 머무를 수 있는 주소 등 여러 조건들이 흔들릴 때마다, 물리적인 거처보다 정서적인 발 디딜 곳이 없다는 감각이 먼저 왔다.

이 글은 그런 상태에서 옷과책을 만나 남기는 레지던시 리뷰다. 한 공간에 대한 기록이지만, 공간보다는 그 안에 있던 나의 상태 변화에 가깝다. 어디에도 정확히 속하지 않은 채로, 잠깐 숨을 고른 사람의 글이다.

창가 책상과 자연광

네덜란드에서 급하게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병원 일과 처리해야 할 일들이 겹쳐, 이동 자체가 숨 가쁜 상태였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옷과책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추운 겨울의 햇빛은 생각보다 공간을 따뜻하게 보여줬다. 근 2년간 한국에 들르면서 이렇게 고요하게 안착했던 날이 있었던가. 드디어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겠다는 감각이, 조용히 몸 안으로 들어왔다.

옷과책은 레지던시이면서 동시에 작업 공간이다. 누군가는 옷에 대해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영상 편집을 하거나 작업을 한다. 생활과 작업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 대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겹쳐 있다.

마루와 이불, 베개가 놓인 쉼 공간

무언가 가득 찬 공간은 아니었지만, 대신 여로님이 하나하나 손수 만들어놓은 물건들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뚝딱뚝딱,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들. 이곳은 이제 막 레지던시가 된 공간이었고, 나는 옷과책 레지던시 1기로 입주했다.

창문과 침대가 있는 정돈된 방

옷과책은 해외에서 급하게 돌아온 사람들, 혹은 잠시 머물 곳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레지던시를 제안한다. 체류의 이유는 묻지 않는다. 필요한 상황을 먼저 놓고, 그다음을 기다린다.

레지던시는 충분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 사실이 내게 조금 과분하게 느껴졌다. 환영받고 있다는 감각이 과분하다고 느껴진다는 건, 어쩌면 그동안 내가 나를 그만큼 돌보지 못했다는 뜻이 아닐까. 정돈된 방 하나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스스로 건네왔다.

손으로 커피를 갈고 있는 모습

다음날 아침, 여로님이 커피를 내려 주었다. 나는 평소 커피를 반 이상 못 마시는 사람인데, 그날은 한 잔을 끝까지 마셨다. 혀가 즐거우니 몸이 먼저 자리를 찾았다는 느낌. 그 감각에 조용히 녹아내렸다.

커피 잔을 감싼 손

마음 놓고 몸이 머무를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하루가 이렇게까지 조용해질 수 있다는 걸 정말 오랜만에 알았다.

외주 작업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빈 작업대를 하나 받았다. 시간이 지나 알고 보니 여로님의 작업대였다. 본의 아니게 자리를 뺏은 셈이 되어 혼자 내적 비명을 질렀다.

오늘은 여기까지 와서 씻고, 커피를 마시고, 책장 옆에 가방을 내려놓는 것으로 충분했다.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는, 이렇게 어설프게 끝나도 괜찮았다.

당고와 국물이 담긴 팬
당고를 끓이는 냄비

나는 한 가지 음식에 빠지면 오래 해먹는다. 질릴 때까지 먹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당고를 만들기 시작한 뒤로 지난 몇 달 동안, 반죽을 굴리고 굽고 다시 식히는 과정이 생각보다 손에 익었다.

당고를 먹는 동안 나는 거의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씹는 감각과 달콤함만 남는다. 그 단순함이 좋아서 계속 만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같은 맛을 반복해서 먹는 일이 슬슬 지루해질 즈음, 옷과책에서 당고를 해먹었다. 다들 너무 맛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묘한 감각이 들었다. 내가 질릴 때까지 먹고 있던 음식이, 사실은 꽤 맛있는 음식이었구나. 혼자 당연하게 여기던 것을 누군가의 반응으로 처음 알게 되는 느낌이었다.

의자 부품을 조립하는 손
드릴로 금속 부품을 고정하는 모습
작업대에서 의자를 만드는 모습
창가 작업실과 미완성 의자

여로님은 요즘 의자를 만들고 있다. 겨울이라 롱패딩이나 코트를 입는 사람이 많아서, 그 상태로도 잠깐 걸터앉을 수 있는 의자를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작업실 한쪽에 아직 다 완성되지 않은 의자가 놓여 있다.

나무 진열함 속 실버 주얼리와 말린 장미
스토리북 레이아웃이 열린 노트북
테이블에서 작업하는 두 사람
펼쳐진 인디 편집물

건호님과 은림님이 크리스마스 오후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브랜드 홍보를 위한 스토리북을 제작 중이었다.

오랜만에 인디 편집물을 가까이서 보니 괜히 반가웠다. 거대한 목적 없이, 누군가를 위해 손으로 만들어지는 출판물. 개인을 위한 출판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던 게 언제였더라, 잠깐 추억에 잠겼다.

영화 크레딧이 보이는 노트북 화면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루카 과다니노의 〈Queer〉.

누군가를 원하는 일이 얼마나 처량해질 수 있는지를 계속 보여준다. 욕망인지 집착인지 구분이 안 되는 채로, 그냥 한 사람을 향해 계속 기울어져 있는 것. 닿고 싶은 마음이 현실에서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감독은 주인공을 놓아주지 않는다. 더 물리적으로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서로를 먼 곳으로 밀려나 버린다. 어디까지 가야 그 마음이 확인되는지, 끝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버드콜, 햇빛이 비치는 책상에서 책을 읽는 모습
옷과책 레지던시 글이 담긴 책을 펼친 손
나무 상자 속 주얼리를 고르는 손들
원두 봉지와 책 읽기 책을 든 손

버드콜에서 데스크메이트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버드콜 오너 지수님을 옷과책으로 초대했다. 버드콜에는 매주 일요일 원두 교환이 있다. 여로님도 커피 전문가라는 사실을 슬쩍 흘렸더니, 자연스럽게 자리가 만들어졌다. 내 소개 하나로 두 세계가 이어지는 게 묘하게 재밌었다.

원두 교환 현장은 나는 잘 모르는 채로 옆에서 지켜봤다. 서로의 원두를 꺼내 놓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오래된 의식 같았다. 무언가를 교환한다는 것, 그 행위 자체가 가진 무게가 있었다. 그날 나눈 대화보다 그 장면이 더 오래 남았다.

눈 오는 밤, 손을 잡고 선 네 사람

나는 지치면 걸을 때 땅을 보는 좋지 않은 습관이 있다. 시선이 아래로 향하면 머릿속에 들어오는 정보가 적어진다. 노이즈캔슬링으로 음악을 트는 건 필수다. 고난을 잊는 나름의 방식이다.

옷과책은 인왕산 중턱에 있다. 그날따라 오르는 길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11시였는지 새벽 12시였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그냥 걸었다. 땅만 보면서.

언덕이 끝나갈 즈음, 고개를 들었다가 흠칫 놀랐다.

저 멀리, 그림자들이 서 있었다. 종이를 접어 오린 뒤 펼치면 손을 맞잡은 인형들이 줄지어 나오는, 그것. 나중에 검색해보니 페이퍼 돌 체인이라고 부른다. 네 명이 이 야밤에 나를 향해 당당하게 서 있었다.

놀라서 심장이 철렁했다가, 그다음엔 이상하게 울컥했다. 조금만 일찍 고개를 들었다면 1초라도 더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누군가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방식이 이렇게 작고 귀엽다면, 나는 매번 기꺼이 고개를 들 것 같다.

눈길을 쓸며 나아가는 사람

페이퍼 돌 체인 중 하나가 탈주했다. 희준 씨였다.

빗자루를 든 두 사람의 승부

페이퍼 돌들끼리 승부를 보고 있다.

옷과책 마지막 날 파티

옷과책에서의 마지막 날, 옷과책 가족들이 파티를 준비해 주었다. 술을 많이 마셨다. 그러면서 두 가지를 깨달았다. 나는 생각보다 술을 잘 마신다는 것, 그리고 옷과책 사람들은 못 마신다는 것. 다음 입주자는 부디 술에 입이 짧은 사람이기를. 희준 씨는 역시 인싸 재질이다. 나를 위해 노래까지 불러 주며 분위기를 띄웠다. 이런 재롱잔치라니.

희수님이 스모키 화장을 해주는 모습

나는 메이크업을 잘 할 줄 모른다. 사실 꾸미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희수님이 처음으로 스모키 화장을 해 줬다. 긴장됐다. 속쌍꺼풀이라 스모키가 될까 싶었는데, 됐다. 심지어 머리까지 넘겨 주었더니 거울 속에 낯선 사람이 있었다. 잘생김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어서, 진짜로 이대로 이태원을 가야 하나 고민됐다.

마무리

옷과책에서의 마지막 날을 떠올리면, 그날 나는 술을 마셨고, 웃었고, 조금 과하게 떠들었고, 노래를 불렀으며, 예상보다 오래 그 자리에 머물렀다. 그러면서도 이 시간이 다른 기약 없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 그래서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옷과책에서의 시간은 조금 다른 종류의 체류였다. 이어질 필요가 없는 만남, 남아야 할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그 안에서 나는 오히려 더 오래 머물 수 있었다. 옷과책은 그 '임시 체류자' 상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대신 그 상태가 더 망가지지 않도록 옆에서 지켜주는 곳이다.

다시,

이곳에는 옷과책이 있고, 작업대와 침대가 있고, 커피를 내리는 아침과 작업이 이어지는 오후가 있다. 생활과 작업은 분리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감시하는건 아니다. 그 장면들이 반복되는 동안,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처음으로 길게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집"이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사용한다. 집은 나에게 도착의 의미이기보다, 종종 나를 고립시키는 단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집을 찾기보다, 집이 아닌 상태에서도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조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옷과책에서의 체류는 나에게 새로운 소속을 요구하지 않고, 소속이 없어도 무너지지 않는 감각을 키워주었다. 이곳은 내가 집에 대한 정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감각을 남겼다.

여기서는 가족처럼 지내자는 말도, 편하게 있으라는 의미없는 말도 하지 않는다. 대신 필요한 만큼만 열려 있고, 넘지 않아도 되는 선은 지켜진다. 나는 그 거리감이 돌봄에 가깝다고 느꼈다. 누군가를 넘어지지 않게 옆에 남아 있는 방식의 돌봄. 나를 어떤 서사로 완성시키지 않고, 그저 지금의 상태로 놓아두는 태도. 그 태도가 나를 편히 놓아준다.

나는 이곳을 떠나지만, 이 기록은 남겨본다. 잠깐 그곳에 놓였던 몸의 감각… 그것들은 앞으로 내가 또 내 감각 속에서 또다시 '집'을 잃었을때, 다시 꺼내 볼 기준이 될 것이다. 그래도 그 기준이, 다음 이동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 믿는다.

2026년 3월 1일

작성 옥이랑

옷과책 레지던시 1기